우리는 흔히 '사회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법이 개인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너 자신을 위해서, 혹은 사회의 결속을 위해서"라며 사적 영역까지 형벌의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할 때,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가장 교활한 형태의 전체주의가 됩니다. 2024년 이후 피해자 없는 일탈에 대한 국가의 처벌 잣대가 점점 더 가혹해지는 오늘날, 남편의 대형 화물차 조수석에서 울리던 15분의 알람 소리는 제게 국가 권력의 진짜 경계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의 개입은 언제 벼랑 끝 개인을 살리는 방패가 되고, 언제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간수의 감시망이 되는지 제 경험과 사유를 통해 짚어보고자 합니다.졸음운전 강제 휴게 법, 내가 직접 목격한 '선한 개입..
예전에도 가끔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통 찻집에서 맛 좋은 꽃차를 팔다가 경쟁 찻집의 고발로 영업정지를 당했다는 이야기나, 식용으로 쓰여온 꽃임에도 현행법상 유통하면 위법이라는 사실에 답답해하는 생산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해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생 식물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임야를 가꾸게 되면서,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저 자신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 소유의 산에서 나는 자생 산야초를 5년 가까이 달여 마시며 건강을 회복했고, 그 유익함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피해자도, 부작용을 겪은 사람도 없음에도 이를 정당하게 식품으로 유통할 방법은 전무합니다. 행정청의 '식품원료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
남편이 구속되던 날, 저는 법을 믿었습니다. DNA 증거와 CCTV 영상은 무죄를 가리키고 있었고, 검사가 제시한 물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피해자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고된 것은 4년 금고 실형이었습니다. 1심 판결문과 항소심 판결문 어디에서도 남편이 왜 유죄인지 제대로 설명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고했고 상고이유서를 작성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률상 판결의 이유를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한 위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한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무죄판결이 쉽지 않은 형식상 이유 - 형식이 사고를 지배한다"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법률과 달리 유죄 판결문에는 원래 그 이유를 거의 적지 않는..
쓰레드에서 한 변호사가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피고인인 의뢰인이 공소장이란 문서의 성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한 말이 공소장에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다고 왜 그러냐고 따진다면서요. 원래 공소장은 그런 내용을 적는 문서가 아니라면서요. 남편의 공소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소장에는 사건의 정황은 하나도 쓰여있지 않았고 그나마 쓰여진 정황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했던 수많은 진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죄명과 그 죄명을 뒷받침하는 사실들만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공소장이란 무엇인가 — 목적을 알아야 읽힌다일반적으로 공소장을 받으면 내 사정도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기대했습니다..
현행 법률 1,600개 중 벌칙 조항이 붙어 있는 것이 1,000개가 넘습니다. 이 숫자를 접했을 때의 압도감이란... 숨이 턱 막히는 듯 합니다. 마치 꼼짝달싹 못하게 갇힌 상태의 답답함이었습니다. 살인이나 절도가 아니라, 그냥 밥 먹고 살려고 김밥 몇 줄 만들어 판 것도, 몸에 좋은 행복한 향기를 나누고 싶어 향수 한 병 조향해 판 것도 전부 징역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그 불편한 진실, 시민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로 만드는 '행정형법'의 구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자연범과 행정범, 같은 전과자인데 다른 이유법학에는 범죄를 두 가지로 엄격히 나누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범(自然犯, Malum in se), 다른 하나는 행정범(行政犯, Malum prohib..
상속포기를 마쳤는데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아버지의 응급실비를 상환하라는 고지서가 날아올 수 있습니다. 암이 회복되는 듯 보였던 어머니가 갑작스런 복통 후 병원에서 폐혈증으로 돌아가신 후 장례 절차를 보고 그 과정만 해도 복잡하고 만만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에 따라 상속 포기든 한정승인이든 상황에 맞게 최선의 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모든 지식과 정보를 동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속포기로 막을 수 없는 청구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상속포기를 해도 응급실비가 청구되는 이유일반적으로 상속포기를 하면 고인의 모든 빚을 이어받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