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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법률 1,600개 중 벌칙 조항이 붙어 있는 것이 1,000개가 넘습니다. 이 숫자를 접했을 때의 압도감이란... 숨이 턱 막히는 듯 합니다. 마치 꼼짝달싹 못하게 갇힌 상태의 답답함이었습니다. 살인이나 절도가 아니라, 그냥 밥 먹고 살려고 김밥 몇 줄 만들어 판 것도, 몸에 좋은 행복한 향기를 나누고 싶어 향수 한 병 조향해 판 것도 전부 징역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그 불편한 진실, 시민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로 만드는 '행정형법'의 구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자연범과 행정범, 같은 전과자인데 다른 이유

    법학에는 범죄를 두 가지로 엄격히 나누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범(自然犯, Malum in se), 다른 하나는 행정범(行政犯, Malum prohibitum)입니다. 자연범이란 법률에 금지 규정이 없어도 인간의 도덕률상 그 자체로 악한 행위를 뜻합니다. 살인, 절도, 강간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행정범은 행위 자체는 반도덕적이지 않지만, 국가가 행정 목적을 위해 법률로 금지하거나 의무를 지운 경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법이 없었다면 아무 문제도 아니었을 행동이 법이 생기는 순간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들었던 성공 이야기들, 그 안에는 거의 예외 없이 '길에서 김밥 만들어 팔아 기반을 닦았다'거나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팔았다는 서사가 있었습니다. 그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고, 저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행위 자체가 식품위생법상 미신고 영업에 해당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행위의 본질은 똑같은데, 법이 만들어진 것만으로 동일한 행동이 범죄가 되어버린 겁니다.

    법학에서는 이처럼 행정 목적을 위해 징역·벌금이라는 형벌 수단을 동원한 법령 전체를 행정형법(行政刑法) 또는 부수형법(附隨刑法)이라고 부릅니다. 부수형법이란 식품위생법·화장품법·건축법처럼 본문에는 행정 규율로 가득 채워져 있고, 마지막 장에만 형벌 조항이 덧붙여진 법들을 가리킵니다. 이 법들은 겉으로는 행정법이지만, 벌칙 조항만 놓고 보면 형법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위반자는 법원에서 똑같이 '전과자'로 기록됩니다.

     

    • 자연범(형사범): 살인·절도처럼 법 없이도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 시대와 문화를 불문하고 반사회적 범죄로 인정됨
    • 행정범(법정범): 김밥 무허가 판매·무등록 향수 제조처럼 행위 자체는 평범하나 행정 절차를 누락해 위법이 된 경우
    • 행정형법(부수형법): 개별 행정법령 말단의 벌칙 조항 형태로 흩어져 존재하며, 위반 시 징역·벌금이라는 형사처벌 부과
    요약: 살인과 무허가 김밥 판매는 법원에서 동일하게 '전과자'를 만들지만, 그 도덕적 본질은 전혀 다르며 이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법의식의 출발점입니다.

    수제 비누 만드는 모습. AI 생성

    행정범이 시민을 잡아먹는 구조, 형벌 인플레이션

    행정형벌이 이렇게 많아진 것은 어떤 사악한 의도의 결과라기보다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이라고 봐야 합니다. 법령을 만들 때마다 집행력을 확보하려는 욕구가 생기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끝에 '벌칙 조항'을 붙이는 것입니다. 현행법 기준으로 시행령·시행규칙까지 합산하면 총 5,200여 개의 법령이 존재합니다(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수사기관조차 이 전체를 파악하고 있을 리 없고, 일반 시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형벌 인플레이션(Penal Infl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형벌 인플레이션이란 과태료·시정명령 같은 부드러운 행정제재로 충분할 사안에까지 징역·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남발함으로써 형벌의 무게와 권위가 점점 희석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법이 너무 많고 처벌 규정이 너무 흔해지면, 역설적으로 국민은 법을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5년간 8만 건의 불법 증축이 적발됐는데 형사 고발 조치는 90여 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든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잘못한 게 맞구나"가 아니라 "재수 없이 걸렸다"고 느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법대로 할 것 같으면 범죄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냐구요. 또 법을 지키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인중개사법을 예로 들면, 법정 수수료 상한을 초과해 중개 보수를 받은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 규정이 있습니다. 귀농 후 만난 이웃에게서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기둥을 세우고 방수 천막을 쳤다가 불법 건축물로 적발되었다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벽이 없더라도 지붕과 기둥이 있으면 건축법상 건축물로 분류되어 사전 신고나 허가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비를 피할 쉼터를 만든 것뿐인데 무신고 증축으로 분류되면 수천만 원대 벌금이나 매년 반복되는 이행강제금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악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범죄자가 되는 예입니다.

     

    요약: 5,200여 개의 법령 끝마다 형벌 조항이 붙어 있는 현실은, 시민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법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형벌 인플레이션을 낳고 있습니다.

     

    행정형법을 아는 것이 시민의 생존 전략인 이유

    반찬 좀 만들어 팔고 싶다, 집에서 만든 향수를 판매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소박한 바람이 실제로는 얼마나 복잡한 법적 지뢰밭 위에 서 있는지 생각하면 답답해집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생각보다 더 무시무시합니다. 화장품법상 무등록으로 향수를 제조·판매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이고, 공간용 방향 제품으로 분류되면 화학제품안전법 위반으로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 벌금까지 올라갑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법들은 애초에 그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악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위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예방적 장치에 가깝습니다. 식중독이나 유해 물질 피해는 한번 터지면 사후 구제가 어렵고, 일반 소비자는 제품 속 위험 요소를 스스로 파악할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자 국가가 사전 허가와 신고라는 장치로 최소한의 안전 검증을 대신해 주는 것이 행정형법의 본래 설계 의도입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하지만 이러한 입법 취지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일상 깊숙이 파고든 촘촘한 규제를 마주할 때면 문득 이런 반발심이 듭니다.

    "이럴 거면 교통사고 위험하니 아예 외출도 금지하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행정의 무게추가 엉뚱한 곳으로 쏠려 있다는 점입니다. 단속과 입증이 편하다는 이유로 마당에 천막 친 평범한 이웃에게는 칼같이 수천만 원대 벌금과 이행강제금을 때리면서, 정작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은 진짜 범죄 기업에는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주곤 하니까요.

    관리 편의를 위해 국민의 일상을 옥죄는 사전 규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막대한 피해를 입힌 진짜 가해자에게 패가망신 수준의 징벌적 책임을 묻는 쪽으로 사법의 칼날이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코티지 푸드 법(Cottage Food Law)처럼 가정에서 만든 저위험 식품은 라벨 표시와 연간 매출 상한 조건 하에 자유롭게 판매를 허용하고, 대신 사고 발생 시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으로 책임을 엄중히 묻는 방식은 분명히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의 고의성이 인정될 때 실제 피해액을 초과하는 배상을 명함으로써 재발을 억제하는 제도입니다. 사전에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사업이 파산할 수준으로 물리는 것이 더 정교한 규제입니다.

     

    제가 이 주제를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행정형법을 아는 것이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형법전의 살인·절도 조항은 몰라도 상식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형법은 모르면 평범한 생계 활동 자체가 형사 기록이 됩니다. 법의 존재조차 모른 채 범죄자가 되는 구조, 그게 행정형법의 본질적 위험입니다.

     

    요약: 행정형법은 살인·절도와 달리 상식으로 피할 수 없고, 알아야만 피할 수 있는 법입니다. 시민이 이를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성숙한 법의식의 핵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행정형벌과 과태료는 뭐가 다른가요?

    A. 행정형벌은 징역·벌금처럼 형사소송 절차를 거쳐 부과되며 전과 기록이 남습니다. 반면 과태료는 행정질서벌이라고 해서, 단순히 질서를 어긴 데 대한 금전적 제재로 전과 기록이 생기지 않습니다. 같은 행정법 위반이라도 어떤 조항에 걸리느냐에 따라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Q. 집에서 만든 음식을 소규모로 팔면 진짜 처벌받나요?

    A. 법적으로는 처벌 대상입니다. 직접 기른 농산물이라도 밭에서 캔 그대로 파는 것과 달리 가마솥에서 찌거나 굽는 등 '익히는(열처리)' 순간 법적으로 정식 허기가 필요한 가공식품으로 분류됩니다. 이를 어기면 식품위생법상 미신고 영업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초범이거나 소규모 생계형인 경우 실무에서는 기소유예나 소액 벌금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상습적이거나 온라인 대량 유통이 확인되면 처벌 수위가 크게 올라가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자연범과 행정범을 왜 구별해야 하나요?

    A.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살인범과 무허가 김밥 판매자를 법원에서 똑같이 '전과자'로 만드는 구조는 처벌의 낙인 효과를 희석시키고,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오히려 떨어뜨립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행정 규제가 과잉인지 적절한지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법을 몰라서 위반했다고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피할 수 없습니다. 형법의 대원칙 중 하나가 '법률의 부지는 범의를 조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몰랐다는 사실 자체는 처벌을 면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법원은 선의·초범 여부를 양형에 참작할 수 있으며, 검사 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수사 자체는 진행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전문가 자문을 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결론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은, 자연범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말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살인을 법 때문에 안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행정형법의 영역에서 '법 없이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법을 모르면 그냥 범죄자가 됩니다. 저는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가장 현실적인 법적 위험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법을 잘 지키자"를 넘어서서, 이 법이 진짜 도덕적 악을 막는 법인지, 아니면 행정 편의를 위해 형벌을 끌어다 쓴 부수형법인지를 따져 묻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불필요한 규제는 줄어들고, 정말 필요한 안전망은 더 정교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정형법을 아는 것은 그 비판의 시작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eL-hplBC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