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남편이 구속되던 날, 저는 법을 믿었습니다. DNA 증거와 CCTV 영상은 무죄를 가리키고 있었고, 검사가 제시한 물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피해자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과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고된 것은 4년 금고 실형이었습니다. 1심 판결문과 항소심 판결문 어디에서도 남편이 왜 유죄인지 제대로 설명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고했고 상고이유서를 작성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률상 판결의 이유를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한 위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한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무죄판결이 쉽지 않은 형식상 이유 - 형식이 사고를 지배한다"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법률과 달리 유죄 판결문에는 원래 그 이유를 거의 적지 않는다는 사실과 판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더더욱 어이가 없는 이유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유죄 판결문에 이유가 없는 이유
형사 판결문을 처음 받아 들고 당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판결문을 아무리 읽어도 "왜 유죄인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판결문이란 판사가 사건을 면밀히 검토한 뒤 그 판단 근거를 소상히 적는 문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죄 판결문과 무죄 판결문의 형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형사소송법 제323조 제1항은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판결이유에 범죄 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증거의 요지'란 어떤 증거를 채택했는지를 나열하는 것으로, 왜 그 증거가 믿을 만한지를 설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유죄 판결문에는 범죄 사실, 채택된 증거 목록, 적용 법령이 간략하게 기재됩니다. 왜 이 증거가 믿을 만한지, 왜 피고인의 진술보다 피해자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않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형사 재판의 97% 이상이 유죄 판결로 끝나는 구조에서, 유죄 판결 하나하나에 상세한 이유를 적기 시작하면 판사의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형사소송법).
반면 무죄 판결문은 다릅니다. 무죄 판결문에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하나하나 따지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논증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죄 판결문은 두껍고, 유죄 판결문은 얇습니다. 그러나 저의 법 상식으로는 그와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 집행이 상식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재판은 피해자와 고소인, 그리고 피고인을 위한 것이지 검사를 위한 것도 판사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판결문 형식이 판사의 사고를 지배한다
영상에서 변호사는 이런 관행에 대해 형식이 사고를 지배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가 현실적으로 재판에서 작동하여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판결의 결과가 피고인에게 실제로 죄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판사의 편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무죄 판결문은 구조상 판사가 무죄의 논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연하게 써내야 하기 때문에 그 논리가 잘 써지지 않는다면, 즉 무죄의 이유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면, 판사는 유죄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은 유죄가 증명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즉 출발점은 무죄이고, 증거가 쌓여서 유죄가 입증되는 방향으로 심증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유죄가 아니기 때문에 무죄다'가 맞는 논리이지, '무죄임이 증명되지 않았으니 유죄다'는 이 원칙에 정면으로 반합니다.
그런데 판결문 형식이 이 원칙을 사실상 뒤집어 놓습니다. 무죄 판결문은 길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유죄 판결문은 간단해도 됩니다. 이 구조에서 판사는 무죄 판결을 내리려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무죄의 이유가 글로 잘 정리되지 않으면, '무죄라고 논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유죄라고 법 논리와는 정반대로 무의식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의 원칙은 분명 한 방향을 가리키는데, 형식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남편의 판결문은 정확히 무죄의 증거가 있다고 해서 꼭 무죄라는 법은 없기에 유죄라는 논리로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물릴 당시의 물린 부위나 정도가 진술과 차이가 나는 것이 신빙성을 배척하기에 부족하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피해자 진술에 모순이 있어도 그게 무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물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무죄'가 아니라, '안 물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유죄'라는 논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죄 추정의 원칙과 정반대인 유죄 추정의 원칙이 실제 재판에서는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불비, 법이 정한 것을 법원이 지키지 않다
이유불비(理由不備)란, 판결에 마땅히 적혀야 할 이유가 기재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 제11호는 "판결에 이유를 붙이지 아니하거나 이유에 모순이 있는 때"를 항소 이유로 규정하고 있고, 이는 상고심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요한 상고 이유가 됩니다.
대법원 2005. 1. 28. 선고 2004다38624 판결은 "판결의 이유는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 필요한 판단을 빠짐없이 기재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판결 이유를 적도록 한 취지는 법원의 판단 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임을 검증하기 위함입니다(출처: 대법원).
남편의 1심과 2심 판결문에는 명백한 무죄 증거가 있었습니다. 개들의 입 주변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인간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입니다. 형사소송법 제171조 제3항은 "감정의 결과에는 그 판단의 이유를 명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합니다. 감정 결과가 무죄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판결문에는 왜 그 감정 결과가 유죄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판결문에는 "당심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이라는 문장만 있었습니다. 그 증거들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기재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물적 증거는 단 하나도 제시된 것이 없었는데도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이유불비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고심은 내용을 검토하는 심리조차 없이, 피고인 측에 변론의 기회도 주지 않고 기각했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39조: 재판에는 이유를 명시하여야 한다
- 형사소송법 제323조 제1항: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 법령의 적용을 명시
- 형사소송법 제361조의5 제11호: 이유불비·이유모순은 항소 이유에 해당
- 대법원 2004다38624: 결론에 이르는 판단 과정을 빠짐없이 기재해야 함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들은 법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당하고 보니 법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죄 판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판사들의 업무 부담 때문일 수 있다니. 피고인을 납득시켜야 할 유죄 판결문은 간단하게 쓰고, 무죄 판결문은 길고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니, 결국 판사의 판결문은 피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검사를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결론...구조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판사에게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억울한 사법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저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그 무수한 사법피해자 단체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이 전부일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재판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경찰 수사만으로 처벌을 확정하지 않고 굳이 재판이라는 절차를 두는 것은,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이 아니라면 재판은 불필요한 절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무죄 판결문을 길게 써야 한다는 형식적 부담이 실질적으로 무죄 판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 그 재판은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백히 이유가 기재되어야 할 부분에 아무 설명이 없는 판결문, 무죄의 증거를 앞에 두고도 왜 유죄인지 납득시키지 않는 판결, 그리고 상고심에서 변론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기각된 결말.
법은 검사를 위해 있지 않습니다. 판사의 업무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있지 않습니다. 법은 국민을 위해,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를 위해 존재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먼저 법을 존중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 법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그것을 몸으로 배웠고, 그 배움이 너무 비쌌습니다. 과연 우리 국민이 그 누구도 아닌 국민을 위한 법이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유죄 판결문에 왜 유죄인지 이유가 없는 게 정상인가요?
A. 일반적으로 판결문에는 당연히 이유가 적혀 있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희가 경험한 바이기도 하지만 실제 유죄 판결문은 범죄 사실과 증거 목록, 적용 법령만 간략히 기재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합니다. 왜 그 증거가 믿을 만한지, 왜 피고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증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법적으로 완전히 문제없는 상태인지는 별개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Q. 이유불비로 상고하면 대법원에서 다시 검토해 주나요?
A. 이유불비는 형사소송법이 인정하는 상고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상고심은 법률심으로,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원심 판결의 법률적 오류를 심사하는 절차입니다. 법률상에는 이유불비가 중요한 상고 이유 중 하나이지만 실무에서는 유죄 판결문의 이유 불비는 상고 이유로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이 제가 참고로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내린 추론입니다.
Q.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으면 증거 없이는 유죄가 안 되는 것 아닌가요?
A.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피고인은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론상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맞습니다. 그런데 판결문 형식상 무죄 판결은 길고 상세한 논증을 요구하고 유죄 판결은 간략해도 되는 구조가, 실질적으로 이 원칙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무적으로는 무죄를 입증하기가 까다로우니 유죄다라는 결론이 나고 있다는 것이 영상의 내용에서 추론되는 결론입니다.
Q. 사선 변호사 없이 형사재판을 버티는 게 가능한가요?
A. 제가 직접 경험하기로는, 법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불리합니다. 재판에서는 사선 변호사가 없는 형사 사건을 판사들이 매우 불편해 합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피고인에게는 매우 불리한 재판이 됩니다. 일반 시민이 생각하는 법 상식과 실제 법 집행 사이의 괴리가 상상보다 큽니다.
결론
저는 법을 믿었고, 그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유죄 판결문에는 왜 유죄인지 설명이 없고, 무죄 판결문은 판사의 업무 부담 때문에 구조적으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법이 정한 이유불비 금지의 원칙은 존재하지만, 실제 판결은 그런 법과 거리가 멉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편의를 위해 법이 존재하는 목적이 되는 국민 당사자의 삶과 인생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형사재판을 앞두고 있거나 주변에 그런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시다면,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합니다. 저는 저의 이 글이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할 수 있도록,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먼저 법을 지키는 구조가 형성되는데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실전법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피해자 없는 범죄 2편 (화물차 15분 휴게시간, 간통죄 폐지, 국가 개입의 경계) (0) | 2026.10.12 |
|---|---|
| 피해자 없는 범죄 1편 (국가월권, 사유재산권, 집합적규범) (0) | 2026.10.07 |
| 공소장 받았을 때 (공소장, 열람등사, 변호전략) (0) | 2026.10.05 |
| 과잉형벌 사회 (자연범, 행정범, 형벌인플레이션) (0) | 2026.10.05 |
| 응급의료비 대지급금 (상속포기, 구상의무, 소멸시효) (0) | 2026.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