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사회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법이 개인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너 자신을 위해서, 혹은 사회의 결속을 위해서"라며 사적 영역까지 형벌의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할 때,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가장 교활한 형태의 전체주의가 됩니다. 2024년 이후 피해자 없는 일탈에 대한 국가의 처벌 잣대가 점점 더 가혹해지는 오늘날, 남편의 대형 화물차 조수석에서 울리던 15분의 알람 소리는 제게 국가 권력의 진짜 경계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의 개입은 언제 벼랑 끝 개인을 살리는 방패가 되고, 언제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간수의 감시망이 되는지 제 경험과 사유를 통해 짚어보고자 합니다.졸음운전 강제 휴게 법, 내가 직접 목격한 '선한 개입..
예전에도 가끔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통 찻집에서 맛 좋은 꽃차를 팔다가 경쟁 찻집의 고발로 영업정지를 당했다는 이야기나, 식용으로 쓰여온 꽃임에도 현행법상 유통하면 위법이라는 사실에 답답해하는 생산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해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식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생 식물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임야를 가꾸게 되면서, 이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저 자신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 소유의 산에서 나는 자생 산야초를 5년 가까이 달여 마시며 건강을 회복했고, 그 유익함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피해자도, 부작용을 겪은 사람도 없음에도 이를 정당하게 식품으로 유통할 방법은 전무합니다. 행정청의 '식품원료 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