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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재판이 한창이던 그때, 저는 "석명"이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탄원서를 쓰고, 의견서를 쓰고, 판사가 읽어주기만을 바라며 제출했는데 — 알고 보니 저에게 쓸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판사에게는 실체적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요청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석명이었습니다.
형사재판의 직권주의와 석명준비명령, 무엇이 다른가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민사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각자 알아서 주장하고 증거를 내밀면 판사가 그것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다릅니다. 형사재판에는 직권주의(職權主義)가 적용됩니다. 여기서 직권주의란, 판사가 제삼자로 앉아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변호인의 요구도 단칼에 잘라낼 수 있고, 반대로 유죄 혐의가 보인다면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촉구해야 할 의무도 집니다. 이와 맞닿아 있는 것이 석명 의무입니다. 석명(釋明)이란, 판사가 당사자에게 "이 부분은 논리가 맞지 않으니 보완하라"라고 요구하거나 설명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석명준비명령이란 법원이 변론 준비 단계에서 당사자에게 특정 사항을 미리 밝히도록 명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95조는 법원의 이러한 석명 권한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대법원 판례 역시 판사가 공소사실의 특정이 불분명하거나 법적 구성에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바로잡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원칙이 실제 재판에서 얼마나 자주 무시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 재판에서 저는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무죄의견서와 공소기각의견서로 제출했습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줄로 처리했습니다. 제가 제출한 모든 증명이 단 한 줄에 묻혀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석명준비명령이라는 수단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그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 직권주의: 판사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
- 석명 의무: 공소사실이나 법적 구성에 문제가 있을 때 판사가 당사자에게 보완을 요구할 의무
- 석명준비명령: 변론 준비 단계에서 법원이 특정 사항의 명확한 해명을 미리 명령하는 절차
- 공소장변경: 검사가 재판 중 공소사실의 법적 구성을 수정하는 절차 — 판사가 이를 촉구할 수 있음
공소장 기재 오류 앞에서, 저는 무엇을 놓쳤나
남편 사건의 공소장에는 "중과실치상"이라는 죄명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사실들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기재 내용은 실제 사실과 달랐고, 사실에 기반하면 애초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 위반을 주장했습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공소장 한 장만 제출해야 하며 판사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하거나 불필요한 사실을 기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저는 이 위반을 근거로 공소기각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판사는 "검사는 피고인의 중과실을 뒷받침할 사정과 범행 동기를 적시한 것이므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그 기재 사실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판사는 그 왜곡 여부를 심사하지 않고 형식 논리로 넘겨버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에게는 다른 경로가 있었습니다. "의견서"라는 명칭 대신 "공소장 기재 사실 오류에 대한 석명 촉구서"라는 형태로 제출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름 바꾸기가 아닙니다. 법원에 대해 공소사실의 특정이 부정확하니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명령하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판사가 "검토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댈 수 없는 법적 요청력을 갖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거나 구성요건 해당성에 의문이 있을 때 법원이 검사에게 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대법원). 방조범(幇助犯)으로 유죄 인정이 가능한데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논리인지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조범이란 타인의 범행을 실행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돕거나 용이하게 한 자를 가리키는데, 유죄 혐의가 인정된다면 판사는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촉구하고 방조범으로라도 죄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직권주의의 요체입니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검사가 잘못 기소했으니 무죄"라고 말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재판의 목적 자체를 내팽개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재판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있었습니다. 판사에게는 어마어마한 재량이 있었고, 그 재량이 실체적 진실을 향해 쓰이지 않았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인 가족에게 돌아왔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안 되어 사실상 나홀로 재판을 치렀던 저로서는, 법적 요청력이 더 강한 문서 형식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석명이 뭔지 모르는데, 형사재판에서 일반인도 쓸 수 있는 건가요?
A. 네, 쓸 수 있습니다. 석명은 판사의 권한이지만 당사자가 법원에 석명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저도 처음엔 이 단어 자체를 몰랐는데, 문서 명칭을 "석명 촉구서"로 정하는 것만으로도 판사가 검토를 생략하기 어려운 법적 무게감이 생깁니다. 알고 나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Q. 판사가 공소장 변경을 촉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A. 판사가 석명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리면, 그 자체가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위법 사유로 주장될 수 있습니다. 직권주의 원칙상 판사에게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적극적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 의무를 방치했다는 기록이 남으면 이후 불복 절차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Q.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석명 요청은 함께 주장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공소기각 사유가 되고, 석명 요청은 공소사실 자체의 정정을 요구하는 경로입니다. 두 가지를 병행하면 판사 입장에서 어느 쪽으로도 단순히 넘기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경로를 처음부터 함께 준비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Q. 변호사 없이 나홀로 재판할 때 석명 촉구서는 어떻게 제출하나요?
A. 재판부에 서면으로 제출하면 됩니다. 문서 제목을 "공소장 기재 사실 오류에 대한 석명 촉구서"로 명시하고, 어느 부분이 부정확한지, 왜 석명이 필요한지를 조목조목 적는 것이 핵심입니다. 단순 탄원서나 의견서보다 법적 요청의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판사가 공식적으로 검토 여부를 기록에 남겨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결론
형사재판에서 판사는 단순한 심판자가 아닙니다. 직권주의 원칙 아래 실체적 진실을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의무를 진 사람입니다. 그 의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석명 촉구서입니다.
저는 당시 탄원서와 의견서를 썼고, 판사는 단 한 줄로 그것을 처리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문서 이름부터 달리 달았을 것입니다.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 있다면, 제출할 문서의 명칭과 법적 요청력을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항소심이나 재심을 준비 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판사가 석명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그 기록 위에서 다시 따져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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