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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형사재판 유죄율은 98~99%에 육박합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냥 숫자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재판을 1심부터 상고심 기각까지 직접 지켜보고 나서야, 이 숫자가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공판중심주의란 무엇인가 — 법이 말하는 것과 현실
공판중심주의(公判中心主義)란 형사재판에서 모든 증거 조사와 변론이 법관이 직접 보고 듣는 공판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쉽게 말해, 법정이라는 링 위에서 판사·검사·피고인·변호인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직접 조사되지 않은 증거는 유죄 판결의 근거로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원칙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개정의 핵심은 직접심리주의와 구두변론주의였습니다. 여기서 직접심리주의란 법원이 스스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이고, 구두변론주의란 당사자가 공판정에서 말로 주장하고 제출한 증거를 통해서만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두 개념이 합쳐져 공판중심주의의 뼈대를 이룹니다.
공판중심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입니다. 실체적 진실 발견과 관련해서 형사소송법 이론에는 소극적 실체진실주의와 적극적 실체진실주의라는 대비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소극적 실체진실주의는 "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적극적 실체진실주의는 그 반대입니다. 한국 형사소송법은 무죄추정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소극적 실체진실주의를 따릅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형사소송법).
제가 직접 목격한 재판은 이 원칙과 전혀 달랐습니다. 남편은 검사가 제시한 모든 증거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무죄추정원칙에 따르면 그 순간부터 검사는 공판정에서 유죄를 직접 증명해야 할 의무를 집니다. 그런데 1심 첫 날부터 항소심 마지막 날까지, 검사는 남편에게 단 한 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진술과 최종의견, 그리고 증인에 대한 질문만 있었을 뿐입니다.
- 직접심리주의: 법원이 직접 조사한 증거만 재판의 기초로 삼는 원칙
- 구두변론주의: 공판정에서 말로 주장하고 제출된 증거만 사실 증명에 사용
- 무죄추정원칙: 유죄 확정 전까지는 피고인을 무죄로 봐야 한다는 원칙
- 소극적 실체진실주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
공소장변경과 재판개혁 — 제가 본 문제와 바뀌어야 할 것들
공판중심주의를 공부하면서 공소장변경(公訴狀變更)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습니다. 공소장변경이란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이나 적용법조를 추가·철회·변경하는 절차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입니다. 공소사실의 동일성이란 변경 전후의 범죄 사실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개념으로, 법원은 이 범위 안에서만 공소장 변경을 허가할 수 있습니다. 판례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되, 죄질에 현저한 차이가 있을 때는 규범적 요소도 고려합니다. 예를 들어 장물취득죄와 강도상해죄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연결되더라도 죄질의 차이가 너무 커서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출처: 대법원).
공소장변경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결국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입니다.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이 실제 사실과 다른 경우, 그 다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을 때는 반드시 공소장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겪은 재판에서는 공소장의 내용 자체가 사실과 달랐습니다. 공소사실이 사실대로 기술됐다면 기소된 죄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유일한 유죄 증거인 피해자 진술은 사실과 달랐으며 명백한 무죄 증거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은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외국 법정 드라마를 보면 검사와 변호인의 날카로운 공방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저는 예전에 한국 법정 드라마 속 배우들의 연기가 왜 유독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재판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배우들이 참고할 실존하는 재판정의 모습 자체가 한국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피고인을 향한 검사의 반대신문, 증인 신문의 치열한 공방, 그런 장면이 한국 법정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재판은 개혁할 필요성이 분명해 보입니다. 재판의 영상 녹화 의무화와 피고인·고소인 양측에 녹화 영상을 제공하는 제도가 우선입니다. 현재는 공개재판이 원칙이지만 개인의 녹음·녹화는 금지되어 있어 실질적으로는 비밀재판과 다를 게 없습니다. 또한 배심원제의 실질적 정착, 판사 증원, 재판부가 시작한 재판은 교체 없이 동일한 판사 구성원이 마무리하도록 하는 규정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2년 단위로 재판부가 교체되는 현행 구조는 책임 소재를 흐립니다.
사건이 많다는 것을 핑계로 삼을 수 없습니다.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상고심까지 이르도록 단 한 마디도 묻지 않는 것은 업무량의 문제가 아니라 재판 관행의 문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됐다는데 실제 재판은 왜 여전히 달라 보이나요?
A. 공판중심주의는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법조문에는 자리잡았지만, 재판 관행이 그에 맞게 개선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후퇴한 면도 큽니다. 피고인이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해도 검사가 공판정에서 피고인에게 직접 질문조차 하지 않는 방식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제가 직접 목격한 현실입니다. 원칙이 법전에 있다고 해서 법정 안에서 자동으로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Q. 공소장변경은 검사만 신청할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공소장변경은 검사가 신청하고 법원이 허가하는 구조입니다. 당사자주의 원칙에 따라 공소 유지는 검사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원도 심리 경과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할 때 검사에게 공소장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판례는 이 요구 여부를 법원의 재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Q. 항소심에서도 공소장변경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한국의 항소심은 사후심(事後審) 구조를 원칙으로 하되 속심(續審)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는 항소심에서도 공소장변경이 허용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입니다. 상고 후 파기환송된 사건이 항소심으로 돌아온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Q. 한국 재판에서 개인이 녹음이나 녹화를 하면 안 되나요?
A. 공개재판이 원칙이지만, 법정 내 개인의 사진 촬영·녹음·녹화는 법원의 허가 없이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공개의 원칙이 촬영·녹음까지 자동으로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이 부분은 재판의 투명성과 피고인 권리 보장을 위해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결론
공판중심주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식용 원칙이 되어선 안 됩니다. 법전에 새겨진 글자와 법정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 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재판에서 그 간극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절감했고,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재판 녹화 의무화, 녹화 영상의 당사자 공개, 배심원제 실질적 정착, 재판부 연속성 보장, 판사 증원. 이 다섯 가지는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출발점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줄어드는 방향으로 제도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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