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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닫으면 안전해질 거라는 제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이 사건을 보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교도소 벽 안에서도 편지를 보내며 이어진 7년간의 비극을 통해,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스토킹 범죄의 실체와 갇힌 가해자 앞에서도 피해자가 떨어야 했던 스토킹 범죄의 제도적 허점을 제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7년, 문을 옮겨 다니며

    저는 문을 잠그면 안전해진다고 믿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읽는 내내,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가해자가 벽 안에서 편지를 써 보내고, 그 편지에 "석방되면 다른 여성 앵커를 물색할까 생각 중"이라고 적었다는 대목에서 저는 읽기를 멈추고 한참 창밖을 봤습니다. 7년째 스토킹을 당해온 피해자가 했다는 말, "내가 죽어야 이게 끝나는 건가." 그 한 문장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2019년이었습니다. 50대 유튜버가 한 대형 언론사 여기자의 이름을 그대로 채널명으로 걸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제목에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담겼고, 커뮤니티에는 그 기자의 방송 화면을 캡처해 음란한 글을 올렸습니다. 둘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피해자의 신고로 채널이 삭제되자 가해자는 되레 "이게 왜 성희롱이냐"며 천만 원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재판이 시작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 채널을 열어 피해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사람을 아주 잘못 건드린 거야"라는 말을 영상으로 올렸습니다. 1심 선고 전날에도 영상은 올라왔습니다. 결국 법정 구속이 됐고, 피해자는 그제야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편지가 회사로, 동료들에게로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통, 그리고 열 통 가까이 날아들었습니다.

     

    교도소 담장이 사람의 몸을 가두었을 뿐, 그 사람의 왜곡된 의지와 집착까지 가두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한 음란 소설까지 블로그에 올리고 기사 댓글에 링크를 퍼뜨렸습니다. 이 건으로 추가 2년 6개월형을 받았습니다. 피해자가 그를 고소한 횟수만 무려 여섯 번에 달합니다.

    • 2019년 — 음란 커뮤니티 게시글 작성 및 피해자 실명 유튜브 채널 개설
    • 채널 삭제 후 — 협박 편지·이메일 발송으로 1차 형사 고소
    • 재판 진행 중 — 추가 협박성 영상 업로드, 선고 전날까지 지속 게시
    • 구속 수감 이후 — 교도소 옥중 편지 지속 발송, 음란 소설 유포로 추가 기소
    요약: 7년 동안 범행 무대만 유튜브에서 편지로, 편지에서 인터넷 소설로 옮겨갔을 뿐 집착과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율성 침해 — 삶 전체를 잠식하는 폭력

    저에게도 짝사랑 때문에 힘들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처절하게 배운 것은 상대의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상대는 내 감정의 대상이 되어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결국 남의 영역과 내 영역 사이에 온전한 문 하나를 세우는 연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문을 세우는 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토킹에서 침해되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의 물리적 거처만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하루 일과, 시간, 감정, 소중한 인간관계까지 송두리째 침범당합니다. 어디에 있든 "저 사람이 또 나타나면 어떡하지?"라는 공포가 삶의 배경음처럼 깔려버립니다. 저는 이것이 물리적인 주거 침입보다 더 잔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둑은 문을 걸어 잠그면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킹은 잠글 수 있는 문이 없습니다. 교도소 담장 안에 갇힌 사람도 편지를 보낼 수 있고, 온라인에 비방글을 올릴 수 있으며, 제3자를 통해 악의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피해자를 옥죄는 것은 가해자의 신체가 아니라 가해자의 집요한 파괴적 의지입니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가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성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방식은 달라도 뿌리는 같았습니다. 상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 왜곡된 시선 앞에서는 어떤 물리적 방벽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스토킹은 단순한 '귀찮게 따라다니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갈 헌법상 기본권인 자율성을 완전히 박탈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요약: 스토킹은 피해자의 시간과 인간관계까지 점거하는 폭력이며, 물리적인 잠금장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습니다.

     

    법적 공백 — 담장에 뚫린 우편함의 한계

    스토킹이 독립된 범죄로 처벌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10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경범죄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 조항 등으로 가볍게 다뤄졌습니다. 이 사건이 2019년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초반 몇 년간 제도적 보호 없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에서 홀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각지대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가해자가 교도소에 구속 수감된 이후에도 옥중 편지를 통해 2차 가해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두 번째 재판에서 검찰이 누범 가중 조항을 처음부터 적극 적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수감 중인 범죄자에게 내려진 구형은 징역 2년에 불과했습니다. 사법 제도가 담장은 높게 둘러쳤을지언정, 그 담장에 외부로 통하는 우편함이 뚫려 있다는 치명적인 허점을 메우지 못한 셈입니다.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져도 수감자가 일방적으로 편지를 발송하는 행위까지 사전에 차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피해자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 제한을 넘어, 통신망, 소셜미디어, 우편물, 제3자를 경유한 간접 접촉까지 모두 포괄하는 강력하고 촘촘한 차단망이 반드시 구축되어야 합니다.

    요약: 현행 제도는 가해자의 신체 구금에만 집중할 뿐, 옥중 서신이나 온라인을 통한 간접 접촉 등의 2차 가해를 원천 차단하는 데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지금 스토킹을 겪고 있다면 (FAQ)

    Q. 가해자의 연락이나 메시지를 차단하는 것이 좋은가요?

    A. 즉시 차단하기보다는 증거 수집을 위해 보존하는 것이 법적으로 매우 유리합니다. 문자, SNS 메시지, 통화 녹음, 우편물, 게시물 캡처본 등을 일시 및 수신 내역과 함께 삭제하지 말고 백업해 두어야 추후 스토킹처벌법상 지속성과 반복성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Q. 가해자에게 법적으로 어떤 분리 조치를 요구할 수 있나요?

    A. 112 신고를 통해 즉각적인 '긴급응급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신청할 수 있으며, 법원에 유치장 유치나 서면 경고를 포함하는 '잠정조치'를 청구하여 접근을 강제 차단할 수 있습니다.

     

    Q. 교도소 안에서 가해자가 편지를 보내오는 경우 어떻게 막아야 하나요?

    A. 해당 교정시설(교도소·구치소)에 즉시 민원을 제기하고 스토킹 피해 사실을 알리며 수용자 서신 수발신 제한을 요청해야 합니다. 또한 발송된 편지 원본은 버리지 말고 경찰에 추가 스토킹 및 보복 협박 혐의로 즉각 제출하여 가중 처벌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Q. 가해자가 장난이었다거나 호감 표시였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안 되나요?

    A. 가해자의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반복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했다면 명백한 스토킹 범죄로 처벌받습니다.

     

    결론

    스토킹은 사람의 뒤만 쫓는 단순한 괴롭힘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일상을 점거하고, 생각을 지배하며,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중대한 폭력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가해자를 가두는 높은 담장 하나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계를 세워주는 제도적 안전망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누릴 자율성이 있습니다. 그 선을 존중하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타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인간 사회의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지금 스토킹의 그늘 아래서 고통받고 계신다면 결코 혼자서 버티지 마십시오.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적극적으로 신고하며, 공적 기관에 당당히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당신의 소중한 하루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집착을 채우기 위해 희생되어야 할 공간이 아닙니다.

    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